일본 통치 시대 다이쇼(大正) 기간, 일본인은 대만의 쌀 생산과 유통을 관리하기 위해 각지에 신용조합을 설치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이들은 농업협동조합으로 전환되었다. 농업은 일찍이 사람들의 생계와 경제의 주축이었고, 쌀 생산은 시웅강(芎林)의 주요 농산물이었다. 따라서 농협은 가공·홍보·개선이라는 중요한 책임을 맡았다. 당시의 미곡창고 공장은 극히 중요했으며 시웅강 지역 역사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었다. 시웅강 농협의 ‘미곡창고’는 1942년(쇼와 17년) 일제 강점기에 지어졌다. 이는 미곡 가공 기능을 갖춘 정밀한 목조 건축물이었다. 이후 농업이 점차 변화하고 쌀 생산이 급감하면서 역사 속으로 물들 수밖에 없었다. 1999년 구이어우(九二一)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뒤, 전 행정원이 700만 위안을 보조하고 당시 시웅강 향 공소가 755만 위안을 추가로 조성하여 행정소가 복구 공사를 맡았으며, 그 사업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