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초기에 창화가 설립되었다. 창이의 물이 짜서 우물에서 솟은 샘물은 달았고, 성벽을 그곳에 쌓기로 거의 결정되었다. 그러나 창이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몰래 우물에 소금을 뿌려 방해했다. 결과적으로 현에서는 지금의 창화에 성을 쓰기로 했다. 용무우물은 지금은 시멘트로 다시 지어졌고, 예전의 모습은 아니다. 『창화현지』에 “용무우물은 진 북쪽 17리에 있다. 샘물이 수십 자 솟아 올라 옥같은 꽃처럼 흐르고, 산 아래 밭은 이 샘물로 관개한다. 색은 푸르고 맛은 달아, 주민들이 자주 떠간다. 옆의 두 돌이 용의 입을 닮았으므로 이름이 붙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진은 용정구청의 도움으로 제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