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교로 향하는 후시 진으로의 동쪽 바다에 위치한 작은 섬이 조용히 바다 위에 떠 있습니다. 다리 위의 분주한 교통 상황과 대조를 이룬 이 고립된 작은 섬은 신비롭고 고요한 분위기를 품고 있는데, 이 섬의 이름은 야청 윤자(野清水由子)입니다. 옛 이름인 기룡 윤자(企龍由子)처럼 명칭이 다양하게 바뀐 이 섬은, 저조 때 서쪽에 모습을 드러내는 가느다란 바위 형상이 용 꼬리처럼 보이는 "룡위(龍位)"와 동쪽의 기어(企耶) 모양이 겹쳐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이어지는 명칭으로는 어징 윤자(魚井由子), 어정 윤자(野政由子), 기룡 윤자(企龍由子), 언진 윤자(恩金由子), 미정 윤자(美井由子) 등이 있습니다.
"야청 윤자"의 명칭에 얽힌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섬의 청 goose가 먹이를 구하러 나가던 동안, 한 쌍의 철 goose 중 암 goose를 인간들이 데려간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남아 있는 수 goose는 암 goose를 찾아 이 섬에 머물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합니다. 이 전설에 따라 주민들이 처음엔 연청 윤자(燕青由子)로 부르더니 결국 야청 윤자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설명으로는 용안과 정중교 설치 이전, 대산과 중툰 마을 사람들이 이곳을 걸어 다니며 농산물과 수산물을 만공으로 운반했으며, 섬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뜻에서 "염안 윤자(眼安由子, 눈앞 섬)"라고 불렀으나, 발음이 비슷해서 "야청 윤자"로 와전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야청 윤자의 면적은 0.0069제곱킬로미터, 해안선은 0.331킬로미터, 최고 높이는 14미터입니다. 지형은 주로 현무암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과 남쪽에는 붉은 화산 점토 암석층과 붉은 토층이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붉은 암석층은 해수의 장시간 침식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조기 시기에 황해의 중서 마을에 가까워, 주민들이 소와 고구마를 길러왔던 곳이기도 합니다. 섬에는 일본 식민 시대에 미국군 착륙 방어를 위해 일본군이 파낸 요새 터와 깊은 동굴 유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30~40년 전까지 ROC(中華民國) 군대가 주둔한 흔적이 있습니다.
저조 시 야청 윤자는 갯벌과 연결된 섬이 되며, 정중교 아래의 거대한 갯벌을 건너 이 섬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수 간격에 주의해야 하며, 다시 만조가 되면 고조 시 생기는 고립된 섬은 바다 속에서 현무암 바위 형상을 드러내며 독특하면서도 고요하며 신비로운 모습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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