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향(梧棲鄕)은 한때 교통 요충지라는 전략적 위치 덕분에 번성했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퇴적과 하류의 흐름 변화,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경제·정치 중심지 이동이 겹치며 쇠퇴하기 시작했다. 기항(基隆)과 가오슝(高雄)이 국제무역의 주요 항구로 떠오르면서 타이중(臺中)의 경제·정치적 초점은 지금의 타이중역 일대로 옮겨갔다.
그 결과 전성기를 누렸던 다리(大里)는 점차 퇴색해갔다. 오늘날엔 그때의 영광 흔적만이 남아 있다. 다리 구가(老街)를 찾으면 옛 다리 부두와 200미터 길이의 붉은 벽돌길이 아직 남아 있어 옛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의 목조 건물은 사라지고 청위안당(慶源堂) 같은 몇 채의 고택만이 남아 있다.
다리 구가를 방문하기 전 그 역사를 먼저 알아두면 옛 번영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옛 부두의 위치는 거리 끝에 보존돼 있지만 원래의 건축 경관은 사라진 지 오래다. 좁고 긴 점포들을 유심히 바라보면 이 땅이 한때 얼마나 활기찼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높은 임대료와 한정된 땅으로 인해 한 평 한 평이 귀중했던 터, 그것이 당시 번영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와 남은 건축물을 통해 역사적 사건과 교통 요지가 어떻게 다리의 번영을 만들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타이중의 현대적 발전도 그 과거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특징은 ‘팅쯔지아오(亭子腳)’ 건축양식이다. 말(馬)이 다니는 층과 집 처마를 떨어뜨려 놓은 이 구조는 독특해 꼭 눈여겨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