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항문은 동시구와 시항촌의 서쪽에 위치하며, 다강을 마주보고 있다. 규모와 형태는 일승문과 비슷하고, 푸른색 글씨로 “後倚癸方其悉合;前朝丁向總咸宜.”라는 대련이 새겨져 있다. 천간에서 癸方은 북쪽을, 丁向은 남쪽을 가리켜, 월항문이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열려 있음을 나타낸다. 문 위쪽 양옆에는 원형의 총구가 있고, 대련 아래에는 사각형의 총구 두 개가 있어 방어에 매우 유용하다. 월항문과 일승문의 누각은 신성개장촌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존하는 사료에 따르면, 신성의 개장은 청나라 도광 5년에 설立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땅을 개간하고 돌담으로 죽림 경계를 정하여 토지를 나누고 집을 지었다. 그들은 협력하여 농업에 종사하며 ‘합흥촌’이라 불렸다. 대만생의 난 이후, 합흥촌 사람들은 외부 침입에 대비하여 동쪽과 서쪽에 문을 세우고 각각 총구를 두어 전투 준비를 갖추었으며, 마을 주변에 대나무를 심어 강도를 막았다. 민국 88년 9·21 중부 지진 때 월항문이 손상되었고, 문화국은 이를 역사 건축물로 등록하여 복원·보존하였다.